아나사지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

아나사지 문명은 약 12-13세기,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번영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문명 입니다.
오늘은 역사적으로 번영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문명인 아나사지 문명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Native Americans)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 전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뭐라고 부를까요 ?

흔히 알고 있는 ‘인디언(American Indians)’ 이라는 용어는 처음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유럽인들이 이를 인도로 착각해서 붙여진 이름이고요.
정확히는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 또는 ‘북미 원주민(Indigenous Peoples of North America)’이라고 부릅니다.

이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후손은 현재도 미국, 캐나다, 멕시코, 남미 등지에서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어요. 현대 사회에서도 그들의 전통, 언어, 문화,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많다고 해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분류되는 원주민 종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로쿼이(Iroquois)
  • 체로키(Cherokee)
  • 나바호(Navajo)
  • 아파치(Apache)
  • 수(Sioux, 라코타/다코타)
  • 호피(Hopi)
  • 푸에블로(Pueblo)

오늘은 이중에 푸에블로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아나사지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나사지(Anasazi)

아나사지족(Anasazi)은 현대 북미 원주민 부족 중 푸에블로(Pueblo)족의 조상으로,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서, ‘고대 푸에블로인(Ancestral Puebloans)’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들은 현재의 미국 남서부 지역의 4개 주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가 접경하는 지역에 거주했으며, 수준 높은 건축 기술과, 천문학 및 농업에서 뛰어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나사지 문명은 약 1,200년 이상 지속되었는데요. 그들이 거주했던 지역적 특성과 독창적인 건축 방식 덕분에 매우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절벽을 이용한 거주지인 ‘클리프 페이스(Cliff Palace)’

클리프 페이스는 미국 콜로라도 남서부에 있는 메사버드 국립공원 메사버드 국립공원(Mesa Verde National Park) 에 있는 아나사지족의 거주지 입니다.

아나사지족은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에 집을 지었으며, 이는 자연적인 방어 기능과 기후 조절 효과를 제공했습니다.
여름에는 절벽이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유지되고, 겨울에는 태양열을 흡수해 따뜻함이 유지되었죠. 또한 높은 곳에 위치하여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푸에블로(Pueblo)’ 스타일 건축물

푸에블로는 흙과 돌을 쌓아 만든 다층 구조의 주거 형태로, 현대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진흙과 짚을 섞어 만든 벽돌인 어도비(Adobe) 벽돌 및 사암으로 만들었고, 사다리를 이용해 위층으로 이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창문이 작고 문이 적어, 더운 낮에는 내부를 시원하게 유지하고 밤에는 따뜻함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푸에블로

지하식 건축, 키바(Kiva)

키바(Kiva)는 원형의 지하 공간으로, 종교적 의식이나 공동체 모임을 위한 장소였습니다.
지하식이므로 천장에 작은 출입구가 있고, 중앙에는 화로가 있어 실내 난방과 통풍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관개 시스템

아나사지족이 놀라운 점은,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강우량이 매우 적은 지역이였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테라스 농법과 저수지 시스템을 활용하여 옥수수, 콩, 호박 등을 재배하면서, 1,200년 이상 문명을 지속해나갔습니다.

천문학적 설계

차코 캐니언(Chaco Canyon)의 푸에블로 보니토(Pueblo Bonito)는 태양과 달의 주기에 맞춰 설계되었습니다.

절기(하지, 동지)에 따라 빛이 특정한 장소를 비추도록 설계된 구조물도 발견되어, 이 문명이 높은 천문학적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코 로드

차코 로드(Chaco Road)는 아나사지 문명의 중요한 교통 및 통신망으로, 차코 캐니언(Chaco Canyon, 뉴멕시코 주)을 중심으로 여러 푸에블로 정착지를 연결하는 도로 체계입니다.

꽤 먼 지역에서 부터 건축물 자재를 실어 나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로서, 도로 폭이 약 9m(30피트) 이상인 경우도 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여러 개의 차선을 가진 도로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라 의식적, 천문학적, 정치적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무역과 교류의 중심축으로 사용되었으며, 옥수수, 터키, 도자기, 장신구, 코코아 등 다양한 물품이 이 도로를 통해 유통되었습니다.

차코로드가 효율적이었던 이유는 자연 지형을 따르지 않고, 가능한 한 직선으로 도로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계곡이나 언덕이 있어도 우회하지 않고, 계단식 절벽길(stairways)이나 램프를 만들어 직진하는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위 절단, 성토, 계단 건설 등의 토목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나사지 문명

번영하던 문명이 갑자기 사라지는 대부분의 이유는 거주지의 자연 환경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아나사지족이 거주지역 역시도 심한 가뭄(drought)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주변 부족과의 전쟁 등으로 인해 거주지(dwelling)을 버리고 떠난 것(abandon) 으로 보는 이론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새로운 조사 연구도 있습니다.

인구 증가와 삼림 벌채 (deforestation)

아나사지족은 원래 유목민(nomadic)이였어요. 수렵인이고 채집인이었죠.

서기 700년경, 강우량이 더 일정해져서 농작물을 재배하기 쉽게 만들어지자 아나사지족은 한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해요.
미국에서 유일하게 네 개의 주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곳으로 ‘포 코너스(Four Corners)’라고도 부르는 이곳의 북동부 지역에 있는 고원(plateau)에서 문명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들은 절벽 위에 돌과 어도비 벽돌로 집을 지었고, 옥수수, 호박, 콩과 같은 작물을 경작했고, 이는 성공적 이였어요.
아나사지족은 수확물을 도기에 보관했는데, 도기 덕분에 수확물을 보전하고 수확이 적은(lean) 해에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죠.

이렇게 해서, 풍부한 음식을 토대로 인구증가가 되고, 문명은 1,200여년 가까이 번성했습니다.

더 많은 농작물을 재배해야 했어요. 간단히 말해 거주민들의 필요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간의 미묘한(delicate) 균형이 흐트러진 거죠.

그런데 남서부는 늘 다소 취약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이곳의 토양은 이판암 위에 사암이나 석회암 같은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지질구조는 침식이 되기 쉽고, 인간 활동으로 쉽게 약화 되죠.

아나사지족이 거주하는 동안 인간 활동이 증가했는데요. 이 시대에 삼림벌초가 심하게 되면서, 거주민들의 필요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간의 미묘한(delicate) 균형이 흐트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림벌채 증거

이 시대에 삼림이 벌채되었는지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바로, 숲쥐(pack rat) 쓰레기 더미(midden)의 존재 때문입니다.
숲쥐는 숲에 사는 쥐의 한 종류에요. 쓰레기 더미는 간단히 말해 배설물(feces)과 쓰레기 무더기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숲쥐가 쓰레기 더미에 오줌을 누면, 이 오줌이 결정화 되어 모든 걸 한데 붙여 버린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 더미는 바짝 마르고(mummify) 화석같이 되서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이 보존됩니다.

과학자들은 쓰레기 더미들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것이 서기 10000년 이전에 형성된 것을 발견하죠.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게 됩니다.

바로 솔잎(pine needle) 인데요. 이 시기 소나무는 지역에서 지배적인(predominant) 수목이었고, 숲쥐는 솔입을 먹었어요.

흥미롭게도 이 시기 이후의 연대로 추정되는 쓰레기 더미는 솔입이 없더라는 거죠.

즉, 숲쥐가 이전에는 솔잎을 먹었지만, 이후에는 먹지 않았다는 것. 그러니까 소나무가 급격히 감소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지속 불가능한 속도로 나무를 베기 시작했고, 토양의 급속한 침식 원인이 됩니다.

경작지 없이는 농사가 어려워지지만, 농작물에 크게 의존하게 된(turn to) 문명에서는 수확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다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옥수수와 콩 대신, 야생 사냥감으로 보충하며 팽나무 열매(hackberry)와 명이주(pigweed)를 먹었는데, 이 숫자도 줄기(dwedle)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빈약한(meager) 식량(sustenance)은 지속될 수 없었고, 결국 이 지역이 사람이 거주하기에 부적합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거죠.

그래서, 그들이 이주를 하게 된 것입니다. 더 푸른 초원(pasture)을 찾아 four corners 지역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무리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에 또 다른 컨텐츠로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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