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원서로 읽은 프리다 맥패든의 브레인 데미지(Brain Damage) 책 후기입니다.
페이퍼북으로 만들어져서 들고 있기도 가볍고요. 빠른 전개와 ‘이게 어떻게 된거지?’ 궁금증을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약간 숏폼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읽기 좋은 전개라고나 할까요.
오늘은 최근 스릴러 장르에서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작가 프리다 맥패든(Freida McFadden)의 『브레인 데미지(Brain Damage)』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 봅니다.
브레인 데미지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 샬럿(Charlotte, 애칭 샬리)은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성공한 피부과 의사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샬럿이 진료실 풍경 에서부터 시작되는데요. 샬럿이 사타구니 부위에 곰팡이가 핀 환자를 치료하는 에피소드가 초반부에 꽤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는데요. 공교롭게도 이 책을 막 읽기 시작하던 무렵, 저 역시도 똑같은 증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하필 사타구니 곰팡이 치료 장면으로 주인공과 내적 친밀감을 쌓게 될 줄은 몰랐네요. ㅎㅎ.
여기에 한가지 더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머리에 총상을 입은 주인공 샬럿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심각한 뇌손상 후유증으로 인해 왼쪽을 보지 못하는 증상이 생기거든요.
저는 왼쪽은 볼 수 있지만, 고개를 돌리면 안되는 보우 헌터 증후군이거든요. 뭐 진단과 증상은 다르지만, 어쨌든 왼쪽을 마음껏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더 되었네요.
작업 치료와 재활 훈련
이 소설이 가진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뇌손상을 입은 환자가 작업치료와 재활 훈련을 통해 어떻게 무너진 일상을 한 조각씩 회복해 나가는지를 놀라울 만큼 치밀하고 자세하게 표현한다는 점 입니다.
재활 병동에 입원한 샬럿은 매일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에 따라 여러 치료 그룹을 오가며 치료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인지하고 오늘 날짜와 현재 장소를 매일 되짚는 ‘오리엔테이션 그룹(Orientation Group)’, 머릿속을 맴돌기만 할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단어를 끄집어내며 말하기를 연습하는 ‘스피치 그룹(Speech Group)’, 마비된 손가락을 움직여 작은 구멍에 핀을 꽂는 등 미세 근육의 감각을 깨우는 ‘상지 그룹(Upper Extremity Group)’,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치료사의 부축 속에 한 걸음씩 내딛는 ‘워킹 그룹(Walking Group)’, 그리고 보드게임이나 카드 놀이를 통해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되찾는 ‘게임 그룹(Game Group)’까지. 머릿속 생각과 달리 몸과 입이 따라주지 않는 환자들의 좌절감과 각 그룹의 작업치료 과정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디테일할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는데, 알고 보니 작가인 프리다 맥패든이 실제로 뇌손상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현직 의학 전문가라고 하네요.
뇌혈류 장애를 앓고 있는 저로서도, 조금만 사태가 악화되면 겪게 될 수 있는 일들이라서, 더 집중해서 읽은것 같아요.
두개의 이야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 구조는 주인공 샬럿이 기억을 잃기 전, 피부과 의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고 전(Before)’ 시점과, 뇌손상을 입은 이후 재활 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사고 후(After)’ 시점이 계속해서 교차시키는 방식입니다.
사고 이후의 샬럿은 자신이 왜 총을 맞았는지는커녕 방금 전의 일조차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지만, 과거의 시간선이 사건 발생 시점으로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미심쩍은 정황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는 방식이고요.
이 교차 구성 덕분에 과거와 현재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도대체 누가 샬럿에게 방아쇠를 당겼을까?’를 추리하면서 읽는 맛이 꽤 쏠쏠했습니다.
마무리
오랜만에 원서로 완독한 책이였는데요. 작가가 평소 구술(Dictation) 형태로 글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지, 문장이 전혀 무겁거나 막히는 구석 없이 누군가 옆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술술 읽힙니다. 질환명 같이 어려운 의학용어가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짧은 호흡의 챕터 구성과 입말처럼 자연스러운 문체 덕분에 꽤 빨리 읽으실 수 있어요.
전체 줄거리를 되짚어 보면, 결국 주인공에게 총상을 입힌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다 읽고 나면 사건의 뼈대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이 워낙 훌륭하고, 앞서 나왔던 웬만한 떡밥이 모두 회수 되는 등, 탄탄한 구성 덕분에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