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휴대폰 만지다가 혼난 썰: 나도 모르게 찾아온 디지털 치매 증상

디지털 치매 증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저도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요. 얼마 전 피부과에 다녀오면서 이게 바로 내 이야기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저는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휴대폰을 만진다는 이유로 단단히 혼이 났습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의학 스릴러 소설 브레인 데미지 후기 속 병원 장면들을 떠올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정작 진료실에 들어가서는 나이 오십이 넘어 의사에게 꾸중을 들은 셈입니다.

처음에는 살짝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더군요.

저는 진료 중에 딴짓을 한 게 아니었거든요. 카톡을 보낸 것도 아니고 숏폼 영상을 보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한 설명을 드리려고 애쓰는 중이었습니다. 머릿속에 없는 정확한 데이터를 꺼내려다 보니 손이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 휴대폰으로 향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눈에는 질문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액정 화면만 들여다보는 불성실한 환자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병원 진료실에서 자각한 디지털 치매 증상 세 가지 순간

돌이켜보면 그 짧은 진료 시간 동안 제가 휴대폰을 꺼내 든 순간이 무려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번에 처방받았던 연고 이름을 물으셨을 때였습니다. 며칠 발라보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간지럽기만 하다고 설명드렸거든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차트를 보며 그때 처방받은 게 어떤 크림이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 앱을 열었습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찍어둔 연고 사진을 보여드리려던 참이었죠. 며칠 내내 내 손으로 바른 연고 이름조차 외우지 못해 사진부터 뒤적인 겁니다.

두 번째는 약 복용 날짜를 계산할 때였습니다. 증상을 제대로 잡으려면 바르는 약 외에 먹는 항진균제를 함께 복용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이 약은 복용법이 꽤 독특합니다. 1주일 동안 약을 먹고, 이어지는 2주 차와 3주 차에는 쉬었다가, 다시 4주 차에 먹는 식이죠. 의사 선생님이 오늘 날짜를 기준으로 언제 다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시려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또 자연스럽게 달력 앱을 켰습니다. 오늘 날짜에 21일을 더하는 그 간단한 암산조차 하지 않고 달력 화면으로 직접 보려던 거였죠. 액정을 켜자마자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낮아지면서 설명을 먼저 들으라는 짧은 경고가 날아왔습니다.

결정적인 세 번째는 평소에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의 성함을 물으셨을 때였습니다. 새로 처방할 약이 제가 평소에 꾸준히 복용하는 약과 충돌할 수 있으니, 기존 약을 처방해 준 의사에게 먼저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 담당 의사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 방금 내려놓았던 휴대폰을 또 집어 들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약을 타 오는 의사 선생님의 성함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병원 예약 앱이나 문자 내역을 뒤져서 이름을 찾으려던 순간, 결국 의사 선생님의 호통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료 중에는 휴대폰 좀 그만 만지고 대화에 집중하라는 말씀이었죠.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선생님 질문에 정확히 답하려고 약 사진을 찾고, 날짜를 세고, 의사 이름을 확인하려던 거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휴대폰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습니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스마트폰 의존

진료실을 걸어 나오는데 참 어이가 없더군요. 의사에게 혼난 상황도 민망했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의 모습이 가장 어이가 없었습니다. 세 번의 질문에 세 번 모두 휴대폰부터 찾은 제 모습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변명거리는 있습니다. 복잡한 연고 이름이나 3주 간격의 복용 날짜, 가끔 만나는 의사 선생님의 성함은 원래 기억하기 까다로운 정보들이니까요. 굳이 외우지 않아도 기록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보는 게 현대 사회의 효율적인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제가 진짜 놀란 지점은 기억의 난이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휴대폰부터 켜는 태도였죠.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을 때 저는 단 1초도 제 머릿속을 뒤져보지 않았거든요.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과정 자체가 아예 생략되어 있었습니다. 질문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뇌를 거치지 않고 손가락이 먼저 움직여 화면 잠금을 풀었던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지적하기 전까지는 제가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했으니까요.

기억하기 어려운 것을 기록에 의존하는 것과, 아예 생각하기를 멈추고 기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흔히 말하는 디지털 치매 증상이나 스마트폰 의존증이 바로 이런 것이더군요. 어느새 휴대폰은 편리한 도구를 넘어 제 머리의 외장하드가 되었고, 이제는 아예 생각하는 주체 자리까지 차지해 버린 셈입니다. 손안의 기기가 똑똑해질수록 정작 제 머리는 조금씩 게을러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도 치료가 필요할까? 디지털 치매 증상 및 병원 방문 기준

집에 돌아와 한참이나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아, 도대체 디지털 치매 증상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느 정도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다행인 점은 디지털 치매가 의학적으로 등록된 정식 질병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에 기억과 계산을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뇌의 해마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기억력과 연산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더군요. 보통 아래와 같은 모습들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힙니다.

  • 가족이나 친한 지인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 내비게이션 없이는 평소 자주 다니던 길도 혼자 찾아가기 불안하다.
  • 손글씨를 쓸 때 갑자기 쉬운 맞춤법이나 한자가 헷갈린다.
  • 방금 무엇을 검색하려 했는지, 혹은 어제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 단계가 되었을 때 단순한 기기 의존을 넘어 실제 치료가 필요하다고 봐야 할까요?

핵심 기준은 ‘단서를 보았을 때 기억이 되살아나는가’에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겪은 것처럼 의사 선생님의 성함이나 연고 이름이 당장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휴대폰 사진첩이나 문자를 보는 순간 “아, 맞다! 이 선생님이었지” 하고 즉시 기억이 난다면 이는 뇌가 게을러진 디지털 치매 단계입니다.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을 사안이 아니라 생활 습관을 고치는 디지털 디톡스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죠.

하지만 휴대폰에 적힌 의사 이름이나 약 사진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내가 이 병원에 갔었나? 이 연고를 발랐었나?” 하고 경험 자체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또한 3주 뒤 날짜를 암산하기 귀찮아 달력을 켜는 수준을 넘어, 달력을 보고도 날짜 계산 방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상적인 판단력이 흐려진다면 그때는 단순한 스마트폰 의존이 아닙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렸던 초로기 치매 증상을 다룬 영화 카시오페아 후기 속 주인공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뇌 기능 자체가 저하되는 경도인지장애나 실제 치매의 초기 신호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저의 경우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기보다,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외장하드에 기대어 뇌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였던 셈입니다.

스마트폰 없이도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던 시절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을 단계는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문득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수십 개씩 머릿속에 넣고 다녔습니다. 자주 가는 길의 이정표도 기억했고, 한 달 뒤의 중요한 약속 날짜도 머릿속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외우던 시절이 있었죠.

문득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짧은 영상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오래된 동네의 가파른 계단 길을 비추는 영상이었는데요. 그 계단을 보자마자 어릴 적 친구들과 가방을 메고 서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이긴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는 단순한 놀이였죠. 바위를 내서 이기면 두 칸, 보자기를 내서 이기면 다섯 칸을 올라가며 누가 몇 칸 남았는지 머릿속으로 셈을 하곤 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 하나 없어도 계단 끝까지 올라가는 내내 까르르 웃고 떠들며 해가 지는 줄도 몰랐더랬죠.

신기한 건 그 시절의 사진 한 장 휴대폰에 남아 있지 않은데도 그때의 풍경과 규칙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생생하다는 점입니다. 그 시절에는 모든 순간을 기계에 저장하는 대신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직접 기억했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 지금은 모든 일상을 휴대폰 안으로 집어넣다 보니, 정작 어제 바른 연고 이름이나 한 달째 가는 병원의 의사 이름조차 머릿속에 남지 않게 된 것이죠.

디지털 치매 극복을 위해 내 머리로 기억하는 연습

피부과 진료실에서의 민망한 해프닝은 저에게 숙제를 남겼습니다. 편리함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제 머리를 너무 오랫동안 놀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데요. 그날 이후로 아주 작고 사소한 규칙을 하나씩 실천해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기억해야 할 일이 생기면, 주머니에 손을 넣기 전에 딱 3초만 먼저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뇌에 새로운 자극을 주면 신경 회로가 다시 촘촘해진다는 뇌 발달과 뇌 가소성의 과학적 원리처럼, 당장 달력 앱을 켜는 대신 머릿속으로 다음 일정을 가늠해 보며 잠든 해마를 다시 깨워보려 합니다. 병원에 갈 때도 대기실에 앉아 오늘 만날 의사 선생님의 성함과 내가 먹는 약의 이름을 속으로 두어 번 되뇌어 보는 식입니다.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암기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내 삶과 내 몸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들까지 기계의 화면을 빌려 말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어릴 적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한 칸씩 계단을 올랐던 것처럼, 이제는 제 머리로 직접 기억하는 감각을 한 칸씩 다시 되찾아보려 합니다. 다음번 피부과 진료실에 들어갈 때는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가만히 넣어두고 의사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계획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또 다른 콘텐츠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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